에세이, 여행기 형식등의 글을 올리는 곳입니다.
# 150926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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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첫날이 비었다.
안개 낀 새벽하늘을 보며 숲으로 들어갔다.
숲은 안개에 젖어 아직 기척이 없다.
새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숲을 흔들지만 아마 햇살이 내려와
나무를 꼬집을 때까지 잠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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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숲길을 조용히 올랐다.
입을 크게 벌려 거친 숨을 천천히 뱉으며 나무 사이로 조각난 하늘을
올려다본다.
손거울만큼 작은 하늘에 내 얼굴이 비친다.
우연히 우물 속을 내려다보다 컴컴한 물위로 비친 낯선 얼굴을 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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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과 하늘은 왜 이리 고요한가...
내가 사는 동네도 같은 하늘 밑에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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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 아래 바위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내 숨소리에 나무가 깨어나 기지개를 편다.
“잘 주무셨는가...?”
“나는 숨차게 숲에 오르는데, 자네는 한 곳에 서있어 편하시겠네...”
나무는 바람에 나뭇잎을 떨구며 말한다.
“천만에...”
“비탈에 중심 잡고 서있어야 하고 바람에 버티려면 얼마나 숨이 찬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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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사는 것이 나만 숨차게 힘든 것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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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
“오늘이 추석 전날인데 더 외롭구먼...”
“이제, 외로움을 오히려 즐길 줄 아는 나이인데...”
나무는 아득히 먼 곳을 보며 말한다.
“사람은...”
“세월을 왜 날로 쪼개고 달로 나누어 그 안에 스스로 갇혀 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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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가 한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가는 날 오는 날 셈하지 않고 이런 날 저런 날 구별 않고 나무처럼
무심히 살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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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여...
“그대는 어떻게 무심히 살 수 있는가...?”
나무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나무는 사람처럼 서로를 비교하지 않아 솔나무, 떡갈나무 모두 함께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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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가 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살면서 남과 비교하며 얼마나 울었던가... 수많은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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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큰 나무여...
“당신은 살며 화나는 적이 없는가...?”
나무는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작은 소리로 속삭인다.
“땅에 살면서 왜 화나는 일이 없겠나...”
“사람처럼 밖으로 화를 내보내지 않고 가슴에서 풀지... 나이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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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 밑둥을 만져보며 이해를 했다.
동그랗게 안으로 속으로 들어갈수록 영글어가는 나이테를...
나는 속으로 화를 삭이지 못하고 밖으로 내뿜고 살아 가슴에 나이테가
한 줄도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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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탈에 홀로 선 나무여...
“어떻게 하면 외롭지 않게 살 수 있는가...?”
나무는 바람 부는 대로 가지를 흔들며 유쾌하게 말한다.
“모든 것을 자네 품에 안으려하지 마시게...”
“못 안으면 서운하고, 떠나면 더 서운하니 나뭇잎에 바람 지나가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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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나가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시원해졌다.
지나가는 것들...
헤어지면 멀어지고, 죽으면 잊혀지는 것을...
욕심내어 품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홀로 외로움도 없었을 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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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없는 나무여 한 가지 더 묻겠네...
“자네처럼 빈손으로 살 수 있을까...?”
나무는 풍족한 얼굴로 말한다.
“내 재물이다, 내 자식이다 하는 집착을 버리시게...
내 몸도 내 것이 아니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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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 가지로 서있는 나무를 보며 홀가분해졌다.
원래 나는 빈손으로 왔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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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촉촉하다.
크게 심호흡하면 밤새 말라있던 가슴이 젖어오고
심장에 피가 묽어져 활기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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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고요함은 생각을 나눈다.
그동안 꿈꾸던 세상을 보여준다.
세상에 태어나 살고 싶었던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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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피어나는 향기는 옛 생각을 불러온다.
한없이 앉아있어도 끊임없이 피어나는 추억은 세월의 순서 없이
스쳐 지나가고 다시 떠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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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나무들 사이로 눕고 싶다.
세상 사람들 속에서 아등바등 거리며 서있지 말고...
그러다 손뼉 치며 한바탕 웃고 싶을 때만 사람들 속에 잠시 서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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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숲속 안개를 가르며 방울방울 나뭇잎에 떨어져 빛이 부서진다.
새들이 날아들며 바람을 일으켜 가을에 노란 잎은 즐겁게 춤추며
땅으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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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떨어지며...
통곡하지 않고 마지막 죽음이란 생각도 없이...
마치 땅으로 소풍 오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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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떨어진 낙엽은 이미 땅으로 변해가며 새 생명으로 변해간다.
땅 위에 숨을 쉬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은 다 새 생명으로 변해간다.
나도 새 생명으로 변하는 날...
소풍 가는 듯 하늘로 올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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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가 머리에 떨어져 발아래 구른다.
다람쥐가 떨어진 도토리 주으려 오면서 내 눈치를 보니...
고요한 숲도 나만의 숲은 아니다.
이제 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맑은 숲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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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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