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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가을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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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자욱한 호수에서 대문이 삐거덕 열리며 노승과 동자승이 나온다.
세상으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조그만 나룻배다.
봄의 모습은...
동자승이 개구리, 물고기, 뱀의 허리에 돌멩이를 매달고서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고 노승은 동자승 허리에 똑같이 돌을 매달아서 잘못을 깨닫게 한다.
여름은...
동자승이 자라 청년이 되어 소녀를 사랑하며 속세로 떠난다.
떠나는 그를 보고 노승은 "가진 것을 놓아야 할 때가 있고, 내가 좋은 건 남도 좋은 줄 왜 몰라"
가을이 되니...
세상에 대한 탐욕, 집착은 결국 살인자가 되고 도망자로 다시 돌아온다.
자신을 배신한 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분노를 노승은 바닥에 반야심경을 써놓고
그 분노를 칼로 파내라고 시킨다.
겨울에...
한 중년의 남성이 등장한다.
죗값을 치르고 돌아온 주인공이다.
노승의 사리를 거두고 그 옷으로 바꿔 입고 허리에 맷돌을 메달고 산을 오르고
수련하면서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니...
한 여인이 찾아와 아이를 두고 떠나며 봄의 문이 또다시 열리고 어린아이가 또
물고기, 뱀, 개구리 입에 재갈을 물리며 즐거워한다.
2003년 김기덕 감독이 경북 청송 주산지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줄거리는 단순하게 전개되지만 순수한 어린아이가 성인이 되고 사랑에 웃고
배신과 탐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후 다시 영혼의 안식을 찾는다.
자연의 아름다운 순환에 맞물려 돌아가는 삶이 허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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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인생인 것을...
삶에 집착이 무겁기만 하다.
버리자.
버리면 홀가분하고 가벼움으로 채워지는 것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영화는 인생의 사계절과 불교의 윤회 사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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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따르면,
주산지는 조선 숙종 1720년에 착공 후 1721년에 완공했다.
이후 300년 동안 호수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수지 주위는 주왕산 자락으로 병풍을 둘러 마치 손으로 호수를 감싼 듯
포근한 분위기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라고는 믿기지 않을 신비함이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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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가 다른 호수에 비해 돋보이는 이유는 수려한 산세의 병풍과 더불어
“왕버들”이란 나무의 역할이 크다.
왕버들은 30여 종의 버드나무 중 하나로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다.
이곳의 왕버들 수령은 대부분 150년 이상이고 주산지 말고는 찾기 어려운
장관이라고 하니 잎이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왕버들에서 태고의 신비함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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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을을 맞으려 주산지로 떠났다.
태백산맥으로 둘러싸인 청송면 시골길을 오르다 보면 사과향기 그윽한
마을을 지나 주산지에 왕버들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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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에 가을이 안개 속에 젖어든다
주산지에 가을이 낙엽 따라 붉어진다
주산지에 왕버들 세월 속에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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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 전망대 계단에 앉으면 시인이 되고 산신령이 된다.
새벽 고요함 속에 그날에만 볼 수 있는 주산지의 모습은 좋은 추억이 된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영화 한 장면을 펼쳐도 좋고,
물안개 속 왕버들을 무심히 쳐다만 봐도 인생에 가을이 가슴에 다가온다.
가을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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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에 서서... ...
카메라를 세우고 왕버들을 마주 보며 구도를 잡아본다.
새벽 물안개 뭉글뭉글 피어올라 하늘에 구름처럼 흐른다.
구름 속에 왕버들은 하얀 적삼 옷을 입고 몸을 살짝 드러내며 흘러간다.
새벽 물안개 속에 잠자던 물새가 고요함에 놀라 낮게 날아 왕버들 가지에
앉아 구름 타고 함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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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초점을 맞추고... ...
왕버들 가지에 셔터를 눌렀다.
왕버들은 낯선 사진가에게 자세를 취해주다가 한 걸음 두 걸음 내게
다가오며 웃는다.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물었다.
“왕버들임이여... ... 물속에 살면 숨차지 않으신가…?”
그는 미소로 답한다.
“사람들처럼 돌아다니지 않으니 숨찰 리 없고, 또한 세상에 서두를
일 없으니 숨찰 리 있겠나...”
나는 왕버들 가지를 잡으며 물었다
“왕버들임이여... ... 어떻게 살면 그토록 오래 살 수 있을까...?”
그는 내 어깨를 안으며 말한다.
“깊은 못은 맑고 고요해 물결에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들으면 마음이 깨끗해져 오래 살 수 있네...”
“세상의 왕이 되기보다, 천상에 올라가기보다 대자유에 이르는 것이
우선이라네….
세상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은 함정에 빠진 토끼처럼 맴돌다 죽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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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산지에 사진 찍으러 급히 올라오며 숨 몰아쉬던 기억을
애써 지우며 왕버들에게 고개 숙여 다시 물었다.
“왕버들임이여... ...어떻하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그는 어리석은 제자에 깨우침을 주려는 스승의 모습으로 조용히 말한다.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욕심에... ...
눈에 보이는 것을 눈으로만 찍으면 그 순간에만 멋진 사진이 찍히고,
눈을 감고 마음을 비우고... ...
가슴에 느낌으로 찍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멋진 사진이 된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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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카메라를 멍하니 쳐다보다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점점 멀어져가는 왕버들의 뒷모습을 가슴에 담았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
삶의 계절에 무심하고 ... ...
작은 물결에 흔들리지 않고... ...
세월이 흐를수록 아름답고 멋진게 변하는 왕버들을 가슴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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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안개 자욱한 주산지를 내려오며... ...
옛 시인의 시구절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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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기쁘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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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주산지 물안개 속을 걸으며,
왕버들처럼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왕버들처럼 맨몸이 되어도 쓸쓸하지 않으니
내 인생에도 봄 여름을 지나 어느덧 가을이 왔음을 알았다
나도 나에게 물었다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며...
아름답게 살아왔냐고...
나는 내게 속삭여 물어보며 물안개 속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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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은 안개 속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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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2020.11.08(일) 오전 10:32:40.. ^^.. 항상 관심 주심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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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2020.11.08(일) 오전 10:33:1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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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2020.11.08(일) 오전 10:38:05..^^..가을이 되니 빈 나무처럼 됩니다..빈 공간에 사진, 글로 조금 채워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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