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행기 형식등의 글을 올리는 곳입니다.

# 입동 . .
2021-11-09 11:35:00
jin 0 42,076
IMG_1032-001.JPG
Canon/Canon EOS 6D | 16-35mm f/0 | FN 9.0 | ISO 200 | Auto W/B | 23.0 mm | 800x538 | Quality(Normal) | Shutter Speed 1/80 | Partial | 2021:10:23 03:13:17

  ..

# 입동 .. 211107

.

숲속 발걸음 아래 낙엽 부서지는 소리

나무는 빈 몸으로 산 능선에 서서 바람에 떨고

산은 나무 키만큼 낮아져 산허리를 곱게 내민다.

발걸음에 떨어지던 나뭇잎이 계곡에 실바람이니

마지막 숨을 내쉬며 미련 없이 내려온다.

여태껏 온 힘으로 버티며 살아왔는데

이렇듯 간단히 두려움 없이 내려온다

산릉선 위로 줄지어 나는 겨울 철새

무리에서 떨어진 한 마리도 능선 뒤로 내려앉는다.

철새 무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날아갈 뿐이다.

.

오늘이 입동이란다.

집 아래 작은 채소밭에는 손부채보다 큰 배춧잎이 밭이랑을 덮었고

하얀 몸통을 땅 위로 불쑥 내민 여인네 종아리만 한 김장 무가 불쑥 솟아있다.

옆집 허리 굽은 노인은 굽은 허리를 더 굽혀가며 배추를 베어내고 할머니는

뽑아놓은 무잎을 베어 양지바른 줄에 널어 시래기를 만든다.

두 분은 가끔 허리를 펴가며 이마에 땀을 닦는다

.

하루하루 곱게 늙어가는 것은 행복이다

늙음은 세월이 걸리고 세월은 본인이 이루기 때문이다.

.

멀리 보이는 두 노인의 모습에서 배추의 향기로움과 시원한 무의 맛이 떠올라

편안함과 행복한 모습에 막연한 그리움이 솟는다.

저들 채소가 김치와 된장국이 되어 한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젊어서는 몰랐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 곧 행복이고 삶의 방향인 것을 느낀다.

노인네 집의 낡고 허름한 담벼락에 깨알 털려고 널어놓은 들깨에서 풍기는 고소함은

절대 돈으로 셈할 수 없고 사회적 배움으로도 풀 수 없는 삶의 깊은 향기였다.

.

내 건조한 삶에는 절대 없는 향기였다.

내 바쁜 인생에는 절대 없는 향기였다.

.

그 집 앞을 지나다 문득 서서 큰 숨을 들이마시며 한가히 흐르는 흰 구름을 올려다 본다.

흐르는 구름 타고 앞마당 감나무의 감이 노랗게 익어가며 두 노인과 함께 흘러간다.

.

뒷마을 작은 저수지를 돌고 뻐꾹산길 산책로를 오른다.

며칠 사이 수북이 쌓인 낙엽이 오솔길을 덮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아래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내 귀를 넘어간다.

바스락... 바시락...”

발아래에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리다가

문득 낙엽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른 봄 봄바람에 휘날리며 땅에 떨어진 벚꽃잎은 가여워 피해 걸었는데... ...

낙엽도 벚꽃처럼 가엽고 예쁜데 피해 걸어야지…….

.

나는 가던 길에 잠시 서서 물끄러미 떨어진 낙엽을 보았다.

낙엽은 예뻤다.

바람에 떨어진 꽃잎처럼 예뻤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조금 전 떨어지기 전까지 살아 숨 쉬었을 텐데....미안하다... ...낙엽아...”

나는 낙엽을 주워 손 위에 놓고 내 숨을 따뜻하게 불어넣었다.

낙엽은 굳은 몸을 풀면서 조용히 말을 건네온다.

맞아요... 조금 전까지 나무에 매달려 숨을 쉬었는데 한순간에 뚝 떨어졌지요... ..

다른 잎들이 다 떨어져도 난 안 떨어질 줄 알았는데.... ....,

나는 천둥 번개도 이겨내고, 온갖 벌레에도 이겨내며 열심히 살았기에 안 떨어질 줄

알았지요... ...

그런데 나도 한순간에 떨어지데요……

사람은 다른가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안정시키며 낙엽에 말했다.

사람도 욕심을 갖고 안 떨어질 것처럼 살지만 꼭 떨어지지... ...”

나뭇잎처럼 사람도 고생하며 살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살지만 때가 오면 꼭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 하는 낙엽 같은 존재라네……”.

그것은 마치...어느 날 물고기가 물었지. "엄마, 바다라고 하는 건 뭐야?"

"글쎄, 바다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걸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라졌다는구나."

물고기가 바다를 나오면 죽는데. 그 순간 자기가 살던 바다를 보게 되지...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에요.

 

.

손위에 낙엽은 알아들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사람도 나뭇잎처럼 꼭 떨어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

나는 말 없이 빙긋이 웃었다.

할 말은 딱히 없지만, 떠오르는 얼굴을 지울 수는 없었다.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분의 말씀을 기억한다.

애야... 세상 욕심부리지 말고 둥글게 살렴... ...”

그리고, 젊어 다녔던 교회 목사님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며,

집사님...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니, 하나님 품 안에서 사랑으로 사세요.

.

문득 그 목사님이 떠오를 때면 작은 소리로 내 맘의 기도를 올린다.

부활의 기적은 오로지 예수 한 분뿐이니 나의 기도는 이것이다.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주소서."

내가 보던 책, 내가 쓰던 컴퓨터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

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가랑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니... ....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고맙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려주고 싶어요.

아침에 깨어 눈 맞추던 식구, 함께 걷던 친구들,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우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야죠.

.

산책하던 중 낙엽을 손안에 감싸 안으며 내려왔다

낙엽은 손안에서 사랑의 하트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

세상 고요하니 빗소리

들리고ㆍㆍ

마음 고요하니 물소리

들리고 ㆍㆍ

일 줄이고 마음 고요히 ㆍㆍ

구름 되어 흐르네 ㆍ

빗소리에 장단 맞추고

흐르는 구름에 춤추고

이렇듯 세월 흘러가니

그렇듯 인생 흘러가네

몸은 땅에 티끌로 살아도

맘은 하늘 천당에 살리라 ㆍㆍ

.

나는 낙엽 떨구고 욕심 없이 빈 몸으로 변해가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자기 뜻대로 부드럽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가슴을 연다

그 열린 깊은 가슴에 내 인생의 계절인 입동을 담아본다.

.

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입동인 지금이고,

나에게 오직 행복한 사람은 옆사람 당신이고,

나에게 지금 해야할 행동은 당신에 사랑이다.

..

.

 

0Comments
-표시할 내용이 없습니다.-
코멘트를 삭제할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비밀번호:
정회원 이상만 코멘트 쓰기가 가능합니다.
머리말(STEP1)
본문(STEP2)
꼬리말(STEP3)
총 게시물 152개 / 검색된 게시물: 152개

본 사이트에 게시된 모든 사진과 글은 저작권자와 상의없이 이용하거나 타사이트에 게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사진의 정확한 감상을 위하여 아래의 16단계 그레이 패턴이 모두 구별되도록 모니터를 조정하여 사용하십이오.

color

DESIGN BY www.softgame.kr

쪽지를 전송하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쪽지보내기
받는이(ID/닉네임)
내용
쪽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쪽지 내용을 읽어오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