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여행기 형식등의 글을 올리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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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동 .. 2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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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 발걸음 아래 낙엽 부서지는 소리
나무는 빈 몸으로 산 능선에 서서 바람에 떨고
산은 나무 키만큼 낮아져 산허리를 곱게 내민다.
발걸음에 떨어지던 나뭇잎이 계곡에 실바람이니
마지막 숨을 내쉬며 미련 없이 내려온다.
여태껏 온 힘으로 버티며 살아왔는데
이렇듯 간단히 두려움 없이 내려온다
산릉선 위로 줄지어 나는 겨울 철새
무리에서 떨어진 한 마리도 능선 뒤로 내려앉는다.
철새 무리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날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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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입동이란다.
집 아래 작은 채소밭에는 손부채보다 큰 배춧잎이 밭이랑을 덮었고
하얀 몸통을 땅 위로 불쑥 내민 여인네 종아리만 한 김장 무가 불쑥 솟아있다.
옆집 허리 굽은 노인은 굽은 허리를 더 굽혀가며 배추를 베어내고 할머니는
뽑아놓은 무잎을 베어 양지바른 줄에 널어 시래기를 만든다.
두 분은 가끔 허리를 펴가며 이마에 땀을 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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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곱게 늙어가는 것은 행복이다
늙음은 세월이 걸리고 세월은 본인이 이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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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보이는 두 노인의 모습에서 배추의 향기로움과 시원한 무의 맛이 떠올라
편안함과 행복한 모습에 막연한 그리움이 솟는다.
저들 채소가 김치와 된장국이 되어 한 가족이 둘러앉아 즐겁게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젊어서는 몰랐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이 곧 행복이고 삶의 방향인 것을 느낀다.
노인네 집의 낡고 허름한 담벼락에 깨알 털려고 널어놓은 들깨에서 풍기는 고소함은
절대 돈으로 셈할 수 없고 사회적 배움으로도 풀 수 없는 삶의 깊은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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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건조한 삶에는 절대 없는 향기였다.
내 바쁜 인생에는 절대 없는 향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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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앞을 지나다 문득 서서 큰 숨을 들이마시며 한가히 흐르는 흰 구름을 올려다 본다.
흐르는 구름 타고 앞마당 감나무의 감이 노랗게 익어가며 두 노인과 함께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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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마을 작은 저수지를 돌고 뻐꾹산길 산책로를 오른다.
며칠 사이 수북이 쌓인 낙엽이 오솔길을 덮어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발아래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내 귀를 넘어간다.
“바스락... 바시락...”
발아래에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리다가
문득 낙엽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이른 봄 봄바람에 휘날리며 땅에 떨어진 벚꽃잎은 가여워 피해 걸었는데... ...
낙엽도 벚꽃처럼 가엽고 예쁜데 피해 걸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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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던 길에 잠시 서서 물끄러미 떨어진 낙엽을 보았다.
낙엽은 예뻤다.
바람에 떨어진 꽃잎처럼 예뻤다.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조금 전 떨어지기 전까지 살아 숨 쉬었을 텐데....미안하다... ...낙엽아...”
나는 낙엽을 주워 손 위에 놓고 내 숨을 따뜻하게 불어넣었다.
낙엽은 굳은 몸을 풀면서 조용히 말을 건네온다.
“맞아요... 조금 전까지 나무에 매달려 숨을 쉬었는데 한순간에 뚝 떨어졌지요... ..
다른 잎들이 다 떨어져도 난 안 떨어질 줄 알았는데.... ....,
나는 천둥 번개도 이겨내고, 온갖 벌레에도 이겨내며 열심히 살았기에 안 떨어질 줄
알았지요... ...
그런데 나도 한순간에 떨어지데요……”
“사람은 다른가요...?”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곧 마음을 안정시키며 낙엽에 말했다.
“사람도 욕심을 갖고 안 떨어질 것처럼 살지만 꼭 떨어지지... ...”
“나뭇잎처럼 사람도 고생하며 살고 세상을 다 가진 듯 살지만 때가 오면 꼭 다른 세상으로
떠나야 하는 낙엽 같은 존재라네……”.
“그것은 마치...어느 날 물고기가 물었지. "엄마, 바다라고 하는 건 뭐야?"
"글쎄, 바다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그걸 본 물고기들은 모두 사라졌다는구나."
”물고기가 바다를 나오면 죽는데. 그 순간 자기가 살던 바다를 보게 되지...
내가 사는 바다를 볼 수 있는 상태, 그게 죽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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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위에 낙엽은 알아들었다는 듯 말을 이었다.
“사람도 나뭇잎처럼 꼭 떨어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
나는 말 없이 빙긋이 웃었다.
할 말은 딱히 없지만, 떠오르는 얼굴을 지울 수는 없었다.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분의 말씀을 기억한다.
“ 애야... 세상 욕심부리지 말고 둥글게 살렴... ...”
그리고, 젊어 다녔던 교회 목사님의 모습이 함께 떠오르며,
“ 집사님... 이 세상이 다가 아니니, 하나님 품 안에서 사랑으로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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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 목사님이 떠오를 때면 작은 소리로 내 맘의 기도를 올린다.
부활의 기적은 오로지 예수 한 분뿐이니 나의 기도는 이것이다.
"어느 날 문득 눈뜨지 않게 해주소서."
”내가 보던 책, 내가 쓰던 컴퓨터… 그 일상에 둘러싸여 눈을 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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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느끼는 죽음은 마른 대지를 적시는 가랑비나 조용히 떨어지는 단풍잎이니... ....
때가 되었구나...
겨울이 오고 있구나…
그러니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고맙고 행복한 마음으로 돌려주고 싶어요.
아침에 깨어 눈 맞추던 식구, 함께 걷던 친구들, 정원에 울던 새, 어김없이 피우던 꽃들…
원래 내 것이 아니었으니 돌려보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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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던 중 낙엽을 손안에 감싸 안으며 내려왔다
낙엽은 손안에서 사랑의 하트 모양으로 변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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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고요하니 빗소리
들리고ㆍㆍ
마음 고요하니 물소리
들리고 ㆍㆍ
일 줄이고 마음 고요히 ㆍㆍ
구름 되어 흐르네 ㆍ
빗소리에 장단 맞추고
흐르는 구름에 춤추고
이렇듯 세월 흘러가니
그렇듯 인생 흘러가네
몸은 땅에 티끌로 살아도
맘은 하늘 천당에 살리라 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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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낙엽 떨구고 욕심 없이 빈 몸으로 변해가는 나무를 올려다보며
자기 뜻대로 부드럽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가슴을 연다
그 열린 깊은 가슴에 내 인생의 계절인 입동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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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입동인 지금이고,
나에게 오직 행복한 사람은 옆사람 당신이고,
나에게 지금 해야할 행동은 당신에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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