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시 즐거웠던 일들을 사진과 함께 공유하는 공간입니다.
어린 시절 집 뒤 솔밭의 산소는 놀이터나 다름없었는데 밤이나 낮이나 이곳에서 자주 놀았다.
공기가 싸늘한 밤이면 낮에 데워진 상석(床石)은 의자처럼 앉아서 놀기가 참 좋았다.
보름달이 머리 위로 드리우는 날이면 내 그림자 가장자리가 유난히 빛나는 걸 보고 신기해하곤 했었다.
풀잎에 이슬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 모습이 더욱 선명해서 마치 후광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구름 없이 하늘은 창백했지만 달은 희고 맑고 고요했다. 달은 온전히 나 하나만을 위해 하늘에 떠 있었고,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상석에 누워 하늘의 별 만큼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피를 토할 듯 이어지는 소쩍새 소리는 교교(皎皎)함을 넘어 무섬증을 낳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날이 밝자면 아직 세 시간여가 남은 깊은 새벽. 4월 중순이지만 공기는 겨울이나 다름없었다.
맑은 보름달이 붉은 달이 돼서 지는 모습을 보고자 나선 길이었다.
창원시 의창구 백월산(白月山 428m) 남쪽 끝 벼랑 420여 m에 있는 정자 전망대가 오늘의 포인트.
촉수 낮은 헤드렌턴 불빛을 의지해 초행 산길을 찾아 올랐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겹쳐지면서 호흡이 가빠왔다. 해발이 낮다고 얕잡아 볼 일이 아니다.
바다가 가까운 산은 오름이 급하다. 아무리 낮은 산이라도 깔딱고개는 있는 법이다.
목적지까지 약 1.5km, 평소 산행길이라면 30여 분이면 족할 거리다.
그러나 밤길이고 몸도 예전의 내가 아닌 육십 줄 후반이니 삐거덕거리며 관절이 따로 놀았다.
목울대 끝까지 차오른 호흡은 엔진 과열로 단내가 났다. 1시간여 만에 포인트인 정자 전망대에 올랐다.
4시 28분이었다.
밝은 보름달이 정자의 검은 실루엣을 바위에 그려놓고 있었다.
정자 속에 내 그림자가 들어가자 그림의 완성도가 높아진 것 같았다.
오르는 길 내내 두견새(자규)의 마중을 받으며 올랐는데 산 초입부터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계속해서 들렸다.
그 가냘프고 애절한 울음은 홀로 산행이었다면 무섬증에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을 것 같다.
두견새의 울음이 어린 시절 솔밭의 추억을 오롯이 소환해 줬다.
땀 밴 등이 식자 냉골이 되어 시렸다. 계절만 믿고 여벌 옷을 챙기지 않은 것이 낭패였다.
감기들기 십상 배낭을 메고 있었다.
백월산(白月山)의 원래 이름은 화산(花山)이었는데 당나라 황제가 백월산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당 황제의 정원 연못에 하얀 보름달이 뜨면, 사자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나타나곤 해서
그 모양을 그림으로 그려서 찾게 했다.
사자라는 사람이 천하를 돌아다니다가 이곳 해동의 북면에 이르러 눈 앞에 펼쳐진 산이 그림과 흡사하여
신발 한 짝을 산 정상 바위에 걸어두고 중국으로 돌아가 황제에게 알렸다.
마침내 밝은 달이 뜨고 연못에 신발 한 짝이 선명하게 비치자 황제가 감탄하여 산이 보름달과 같이 하얗게 비친다고 하여
백월산(白月山)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백월산에서 붉은 달을 본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달은 여전히 맑고 희게 빛나고 산은 고요하게 검은빛으로 누워있었다.
산 아래는 무리를 이뤄 동네의 붉은빛들이 박혀 있고 하늘에는 작지만 하얀 별 무리가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았다.
동쪽 하늘의 붉은 여명이 진해질수록 주위는 조금씩 밝아왔다.
서쪽 산 위의 걸린 달은 흰빛을 잃고 내면의 표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 뜨기 30분 전 달은 붉은 얼굴을 보여주고 서둘러 사라졌다.
백월산에서 달의 궤적을 그리려다 내공 부족으로 시간만 축내고 검은 산마루에 걸린 붉은 달을 겨우 얻었다.
2022. 4. 17. 경남 창원시 백월산에서
수고하셨습니다
자주 올려 주세요~^^
나래를 펴는
유년기 회상
최곱니다
글쏨씨
^^
자주 적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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